'교주 방송'이라 불리는 TV홈쇼핑 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금·토요일 밤 그가 방송에 등장하면 콜센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2만 명이 넘는 인터넷 팬카페도 들썩인다.
GS샵의 패션 프로그램 '쇼 미 더 트렌드(Show me the Trend)'와 뷰티 프로그램 '쇼앤쇼(Show&Show)' 등을 이끌고 있는 쇼핑호스트 정윤정(36)이다.
가격대가 높은 가전 판매 방송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매출을 그는 빚어낸다. 속옷 '원더브라'를 1분당 5300만원치 팔아치웠고, 주얼리만으로 한 시간에 2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소비자에겐 낯선 프랑스 브랜드 모르간(구두·가방)·빠뜨리스 브리엘(의류)을 비롯해 쌍빠(화장품), 시슬리(가방), 에그팩(화장품)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시청자를 무장해제 시키는 친근함이 그의 강점이다. 그는 소위 공주풍 쇼핑호스트가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맨얼굴로 세안하는 등 망가지고 덜 예뻐보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여성 고객들을 휘어잡았다. 토끼털 코트를 팔며 '사실 토끼털은 잘 빠진다'고 할 만큼 솔직함도 무기다.
판매 제품을 직접 착용하며 홈쇼핑 방송에 '리얼리티 쇼'를 도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 재킷은 스튜디오 보니, 주얼리는 제모피아 제품인데 너무 괜찮죠?"라며 마치 쇼핑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처럼 수다를 쏟아냈다.
-늘 즐겁게 방송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인다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거다. 방송을 하며 긍정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를 뿌리고 싶으니깐. 그렇다고 쉽게 일하진 않았다. 입사하고 원형탈모까지 생길 정도로 고생했다.
나는 힘들게 살아야 잘 되더라. TV를 두 개씩 켜놓고 5개 홈쇼핑 채널을 모두 훑고 배우고 연습했다. 3년이 지나니 좀 알겠더라. 그렇다고 마음 놓진 못한다. 생방송은 긴장된 상태를 반복해야 하니깐.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파격적인 방송 스타일이 대범해보인다.
▶새벽 패션 방송에서 춤을 추기도 했고, 침구를 팔며 마치 내 방인 듯 이불 위에 누운 적도 있었다. 쇼핑호스트가 직접 옷이나 가방을 두르고 파파라치 컷을 찍는 방식도 6년 전 처음 시작했다. 쇼핑호스트와 고객이 하나가 되는 '리얼 쇼'를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제품을 잘 팔 수 있나.
▶홈쇼핑은 철저히 심리싸움이다. '사고 싶다'고 만들어야 한다. 여성 속옷을 판매할 때도 무심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사놓고 싶은 남성 심리를 함께 겨냥한다. 남편의 에피소드를 곁들이기도 한다.
또 내 몸이 경쟁력이다. 나를 보면서 고객들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수 있게 부담 없이 예쁜 게 중요하다. 평소에도 내가 파는 제품들로 코디한다. 거리에서 나를 본 사람들이 '실제로 시슬리 가방을 드는구나'하고 놀라면서 팬이 돼준다.
-팬카페를 운영하는 건 업계에서 유일하지 않나.
▶맞다. 지루해서 시작했는데 일이 커져 버렸다. 하하. 지난 2년간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방송을 너무 많이 해 내가 없어질 것만 같더라.
남편이 재미삼아 해보자며 팬카페를 만들어줬는데 이젠 새 삶이 돼버렸다. 카페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전국의 다양한 나이의 여자들이 모여 있는데, 이 분들이 내 경쟁력이 됐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육아를 이유로 나를 포기하진 못하겠더라.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육아는 일보다 백만 배 어렵다. 하지만 육아 경험이 제품을 이해하고 판매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훨씬 경쟁력이 커졌다.
이제 여성의 감성이 중요한 시대이지 않나. 모든 나이대의 여성들을 아우를 자신이 생긴 나의 시대도 이제 시작이다. ·사진 도정환기자 dor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