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견문록 이순형 / 詩와 에세이
1952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 작은 시골에 불과했던 수원에서 태어났지만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으며 큰 세상을 꿈꿨던 소년이 있었다.
그 꿈이 씨앗이 돼 싹을 틔운 것일까. 소년은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과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을 거쳐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해외수출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1980년대부터 30여년간 잦은 해외출장을 통해 세계 50여개 나라를 활동무대로 누볐다.
그의 노정은 서구의 역사 현장에서부터 생소한 작은 마을까지 숱하게 이어졌다.
1280년대의 마르코폴로와 시간을 뛰어넘어 대화를 나누며 그는 자신의 여행에세이를 한땀한땀 기록해 나갔다.
저자 이순형은 "700년이 지나 마르코폴로에 대한 답방을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너무 늦어 죄송스러우나 덕분에 마르코폴로 보다 편안하게 서방을 보고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폴로가 포로로 잡혀 수감됐을 때 감방 동료들에게 심심풀이로 들려준 여행담을 동료 루스티켈로가 글로 남기면서 탄생했다.
서방견문록은 동료가 아닌 현대문명의 상징인 컴퓨터의 힘을 빌어 감방이 아닌 안방에서 쓰여졌다. 낙타를 타고 건넜던 고비사막은 비행기로 하룻밤이면 건널 수 있고, 통신기술의 발달로 훨씬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저자는 중장비 전문벤처 기업인 ㈜파워킹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도 글쓰기 작업을 끊임 없이 이어갔다. 2010년 '계간수필'에 '월급봉투'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과천문인협회 동인으로, 장학회를 운영하는 등 사회활동 역시 활발하다.
서방견문록은 저자가 전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만난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 언어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이야기, 비사까지 거침없으면서도 재치 넘치는 문체로 엮어냈다.
낭만의 대명사인 파리에서 맞은 아침은 그에게 낭만이 아니었다. 루브르의 맨얼굴을 보았으며 에펠탑과 개선문의 역사와 현재의 의미 속에서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한다. 독일 사우나에서 겪은 악몽의 경험담을 듣다 보면 독자들은 그리스, 핀란드, 이탈리아, 바티칸, 밀라노를 지나 알프스에서 태극기를 만난다. 영국의 공업도시들을 거쳐 미국로 날아간 저자는 기독교와 공존하는 총을 보았고, 골드 러쉬를 떠올렸다. 스페인, 터키, 러시아, 멕시코, 아일랜드, 호주, 칠레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의 시선은 어느덧 드넓은 우주로 향한다.
저자 이순형은 "1년에 절반 이상 해외에 나가 있다 보면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닥쳐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청년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