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죄송합니다. 마지막 물건이네요."
지난 24일 서울 명동. 제일모직이 론칭한 '에잇세컨즈' 매장은 평일 오후인데도 문을 열기 전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전날 문을 연 에잇세컨즈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점도 단 3시간 만에 준비한 물량이 동났다.
안팎의 위기에 직면한 국내 패션업계가 '대세'인 SPA브랜드 론칭으로 새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와 망고, 일본의 유니클로 등 저가의 해외 패스트패션(SPA)이 몸집을 불리자 위기감을 느낀 토종 패션업체들이 안간힘을 쏟는 중이다.
26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SPA 브랜드의 매출은 2008년 5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90000원으로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에 맞서 국내 1위 패션기업인 제일모직이 팔을 걷어부쳤다. 제일모직이 론칭한 에잇세컨즈는 오픈 대박을 터뜨리며 본격적인 토종 SPA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3일 오픈한 에잇세컨즈 가로수길점은 3시간 만에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인 체형과 정서에 맞는 의류를 제작하고, 유니클로보다 트렌디한 상품으로 구성한 것이 주효했다. 티셔츠 1만~4만원대, 바지 2~6만원대로 자라보다 30% 저렴하다.
이날 매장을 찾은 대학생 정보람(21·여)씨는 "국내업체서 만들어서인지 팔이나 다리가 길지 않고 딱 맞는데다 스타일도 맘에 든다"며 "봄 티셔츠 세 장과 꽃무늬 원피스를 샀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이미 2009년 SPA 사업을 시작하며 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스파오의 청바지와 미쏘의 원피스는 모두 3만원대. '유니클로보다 싼 SPA'로 자리매김하며 지난해 각각 7000억원, 6000억원을 벌어들였다.
10~20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에이다임의 '스파이시칼라' 역시 저렴한 가격과 튀는 디자인으로 국내 SPA 시장을 공략중이다. LG패션은 TNGT의 컨셉트를 '직장인 SPA'로 바꿨다. 주머니가 가벼운 새내기 회사원들이 주 타깃이다.
◆가격 50% 낮춰 '신상' 출시도
살아남기 위해서 고질적 문제였던 '가격 거품'도 자진해서 걷어내고 있다.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SPA 브랜드와 경쟁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남성복 브랜드 타운젠트와 세아상역의 메이폴, 신세계인터내셔널의 톰보이 등은 봄 신상품부터 가격을 최대 50%까지 내리기로 결정했다. 타운젠트 관계자는 "고가의 상품을 출시한 후 바로 할인해서 판매하는 잘못된 관행을 잡아 고객들이 가격을 믿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저가 브랜드들도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베이직하우스는 SPA 브랜드 격전지로 불리는 명동 매장을 리뉴얼 오픈하고 12년전 가격을 선보였으며, 코데즈컴바인은 디자인을 강화한 '신상'을 대대적으로 출시해 승부를 걸 계획이다.
중저가 브랜드들도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베이직하우스는 SPA 브랜드 격전지로 불리는 명동 매장을 리뉴얼 오픈하고 12년전 가격을 선보였으며, 코데즈컴바인은 디자인을 강화한 '신상'을 대대적으로 출시해 승부를 걸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격인하가 할인점이나 가두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체감 효과는 미지수다. 정작 비싼 백화점 브랜드 가격은 내리지 않고 있어서다.
삼성패션연구소 오수민 연구원은 "올해는 토종과 글로벌 브랜드 간의 본격적인 싸움으로 국내 SPA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토종 SPA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가격을 더 내리고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