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을 놀라게 한 개그맨 이경규와 배우 김하늘의 공황장애, 개그맨 유세윤의 우울증이 연예인들만의 ‘스타병’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 이 같은 정신질환이 암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6명 가운데 1명이 최근 1년 새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고, 성인 4명 가운데 1명꼴로 평생 한 차례 이상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지난해 성인 6022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16%가 최근 1년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평생 살면서 정신질환을 경험한 비율은 27.6%(남성 31.7%, 여성 23.4%)에 달했다. 지난 2006년 조사 당시보다 2배나 치솟았다.
◆“치열한 경쟁·가정 해체 탓”
한국 사람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은 우울증부터 알코올 중독, 공황장애까지 다양했다.
여성의 경우 10명 가운데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를 경험했고, 남성은 5명 중 1명꼴로 알코올 의존과 남용 장애를 겪었다. 최근 개그맨 이경규의 고백으로 화제가 됐던 공황장애 등 불안장애의 평생 유병률도 8.7%였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조사결과 성인 15.6%는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하고, 3.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영업왕’으로 뽑힌 K과장(38·제약회사)도 마음이 괴롭다. 두둑한 인센티브에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2년째 조울증을 앓고 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접대와 실적 스트레스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 기복을 겪고 있다. K과장은 매일 아침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고 자조한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진 원인으로 유전적 문제보다 환경적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의대 정신의학과 조맹제 교수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데다 고령화,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불안·기분 장애나 우울증 등이 늘어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국내에서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남의 눈 두려워 병원 기피
실제로 정신질환 경험자 가운데 전문가를 찾은 사람은 15.3%에 불과했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 A씨(43)도 남의 눈이 두렵기만 하다. 집 근처에 병원이 있지만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주말마다 서울 마포에서 경기도 군포에까지 가 정신과를 찾는다. 그는 “괜한 소문에 ‘정신병자’로 낙인찍힐까 봐 겁나 친한 동료에게도 숨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정신질환을 조기 발견하고 사회적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종합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복지부 임종규 건강정책국장은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에 발견되는 만큼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검진체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