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가위와 카메라 렌즈를 닦으며 정갈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김영승(55)씨는 ‘사진 찍는 가위손’으로 살아온 지 벌써 40년째다. 이발소와 사진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슬로 라이프를 즐기며 추억을 다듬는 중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3동 895번지 ‘북악이용원’. 녹이 슨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5평 남짓한 이발소 안에는 의자 네 개가 전부다. 세면대 위에는 오래된 샤워기와 면도용 비누거품 그릇이 놓여 있고, 검은색 가죽 의자는 세월의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다.
푹신한 이발 의자 앞에 걸려 있는 대형 거울 아래에는 쇠가위, 철빗, 면도기 같은 이발기구와 염색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북악이용원은 시간이 멈춘 듯, 추억 속의 이발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유명 디자이너의 헤어숍, 저렴한 가격대의 프랜차이즈 미용실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도 북악이용원을 찾는 발길은 심심찮게 이어진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노인이지만,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 대학생·대학원생들도 종종 이씨에게 머리를 맡긴다.
“20년 전만 해도 엄청 바빴어. 이 좁은 곳에서 면도사·이발사 대여섯 명씩 두고 일했으니까. 지금이야 많이 줄었는데, 그래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으니까 문을 닫을 수가 없어. 뭐, 닫을 생각도 없고.”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다보니 단골손님들 ‘연차’도 만만치 않다. 35년 전 대학교 시절부터 이씨에게 머리를 맡겼던 20대 청년은 벌써 50대 중년의 신사가 됐다. 그는 아직도 2주일에 한 번씩 들러 머리를 다듬고 간다.
“20년째 충남 당진에서 오는 손님도 있어. 내가 해주는 머리가 제일 마음에 든다네(허허). 또 30년 전 사법고시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한테 술을 많이 샀거든. 출세하면 나 잊지 말라고. 지금 지방에서 변호사 하면서 국회의원까지 당선됐는데, 지금도 가끔 서울에 올라오면 나한테 이발하고 가.”
휴무인 화요일이면 북악이발관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변신한다. 옆집 김씨도, 아랫 동네 최씨도 이야기 보따리를 한 가득 가지고 이발소 문을 연다. 이게 다 주인 아저씨의 후한 인심 덕분이다. 김씨는 밥때가 돼서 찾은 손님에겐 같이 밥 한술 뜨자 하고, 길가다 만난 동네 장애인 청년에게는 사들고 오던 족발을 툭 건네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정(情)이고, 인심이지. 동네 애경사 챙기고, 힘든 일 있으면 발 벗고 나서주고. 그래야 살맛나는 거 아닌가?”
주인 아저씨의 이발 실력은 후한 인심만큼이나 유명하다. 20년 전 청와대 한 행정관이 이발관에 들렀다 김씨의 솜씨에 반해 세 번이나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고사했다.
“기분은 엄청 좋지. 근데 나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어쩌라고? 그냥 쉬엄쉬엄 봉사하면서 여기서 머리할려고. 실력 좋다는 소리 들었음 됐지. 안 그래?”
◆동네 사랑방·추억의 명소
북악이발관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사진관 ‘포토하우스’도 옛모습 그대로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빛바랜 가족사진 액자, 푹신한 자주색 벨벳 소파, 오래된 수동 사진기가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이발 일을 하면서 친구한테 어깨 너머로 사진을 배웠어. 그러다 30년 전부터 사진관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
성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오래된 사진관을 찾는 발길은 뜸하지만, 먼지 뒤집어쓴 사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포토하우스는 추억의 명소다. 김씨는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면 신명이 난다. 집중해 셔터를 눌러 추억을 담고, 인화 작업으로 숨결을 불어넣는다.
“지금이야 찍고 바로 확인하는 게 편하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남는 게 없을 걸? 세월 따라 빛바랜 사진이 다 재산이고 추억이지.”
변하는 게 싫다는 김씨는 소박한 꿈으로 추억을 일궈가고 있다.
“특별히 바라는 거? 없어. 그냥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머리 깎고 사진 찍는 거지. 내가 가진 재주가 이것뿐이니까. 앞으로 어르신들 머리도 공짜로 깎아 드리고 영정사진도 찍어 드릴려고. 음…… 또, 일단 여기 오면 사람들 마음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네. (허허)”
사진/최현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