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들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사노동을 가장 안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개국의 무상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봉건주의의 잔재일까, 한국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무심한 존재일까. 그 남자의 사정을 알아봤다.
서울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유상현(33)씨는 전날 거래처 직원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자정을 넘겨 귀가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1시30분. 아내의 출근시간이 아침 이른 시간이므로 6세 딸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는 것도 유씨의 몫이다.
유씨는 “하루 노동량은 적지만 주말은 거의 육아와 가사노동에 매달려 지내므로 평균 노동량은 상당한 편”이라면서 OECD 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가별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보면 미국은 3시간가량인 반면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은 2시간 미만으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뒷짐지고 불구경’은 아시아 남자들이 가장 심했다. 인도와 일본, 한국 남성이 장보기, 아이 돌보기 등 가사 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미만이었다.
남성잡지 GQ코리아의 이충걸 편집장은 한국남자의 이중성에 대해 “슈트를 입는 것과 슈트처럼 보이는 옷을 입는 것이 다르듯 한국 남자는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빠르지만 젠틀함과 매너, 인본주의 등의 서구문화를 체화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자유분방한 나이인 스무 살에 군에 입대해 획일적이고 복종 위주의 조직문화를 배우게 되고, 제대 후엔 가까스로 취업해 가족보다 일에 매달려야하는 상황도 한국 남자의 이중성을 증폭시킨다”고 짚었다.
◆ 여성 사회진출 막는 족쇄
OECD는 가사노동은 경제에 이바지하는 평범한 방법이라며 설거지,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등은 사회에 공헌하는 중요한 방법이고 즐거운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언과 달리 한국남성의 턱없이 낮은 가사참여도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결정적 족쇄가 된다.
여성은 무보수의 가사노동 때문에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OECD는 분석했다. 특히 여성은 요리, 설거지 등 부엌 일에서 남성의 4배에 가까운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맞벌이의 압박 속에서 육아와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행복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사무처장은 “민주화와 사회적 남녀평등은 많이 개선됐지만 가정 안에서 성 평등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며 “일과 가정이 고르게 양립해야 가족 구성원이 행복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