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소재 직장에 다니는 장현석(26)씨는 점심시간 10분 전이면 인근 편의점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2300원짜리 도시락으로 혼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백반이 6000원으로 오르는 등 솔직히 요즘은 점심값이 부담스럽다”며 “혼자 먹는 점심이 오히려 편하다”고 고백했다.
◆선배들 "더치페이하자" 선언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에 직장인들의 점심 풍속도가 달라졌다. 식사 후 호기롭게 계산서를 집어들던 선배는 “각자 내자!”를 외치고,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혼자 점심을 때우는 ‘나 홀로 점심족’이 늘고 있다.
100원이라도 싸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런치 노마드(Lunch Nomad)족’도 등장했다. 직장인 정현민(33·남)씨는 2700원짜리 점심을 먹기 위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대학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점심식사 후 커피전문점에 들러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던 직장인 최미진(28·여)씨는 요즘 400원짜리 자판기 커피로 만족한다. 원두 가격 상승과 우유 공급 부족으로 단골 커피 전문점이 커피값마저 올렸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면 후배들에게 “지갑을 놓고 나오라”고 말하던 김부장(46·남)도 태도를 바꿨다. 김씨는 “예전에는 넷이 2만원이면 먹었는데, 이제는 3만원으로도 모자란다”며 “후배들 보기 민망하지만 앞으로 더치페이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밥솥·전자레인지·식탁 등 갖춰준 회사 등장
편의점 도시락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편의점 GS25는 지난 7∼22일 전국 5100여 개 매장의 점포당 도시락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1% 증가했다고 23일 밝혔다. 김밥과 주먹밥 매출도 덩달아 뛰었다.
GS25 이기철 식품팀장은 “최근 물가상승으로 음식점들의 가격이 오르면서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종류도 다양하고 실속 있는 편의점 도시락(2000~3000원 대)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직장인들의 ‘자린고비’ 행동을 오히려 좋은 기회로 이용한 회사도 있다. 여의도의 한 무역회사에서는 점심시간이면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밥값을 아끼려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 측에서 사무실 하나를 주방으로 개조해, 밥솥·전자레인지·식탁 등을 놔줬다.
10명 남짓한 회사 직원들은 12시30분이면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들은 매일 ‘한솥밥’을 먹으니 없던 동료애도 생기고 부서 간 아이디어도 공유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통가 관계자들은 점심 해결을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거나, 날씨가 풀리면서 발품을 팔아가며 저렴한 밥집 사냥에 나서는 직장인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