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의 패션지수가 곧 그 나라의 패션수준이 되는 시대다. 지난해 전세계의 시선을 모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영부인들의 패션 경쟁은 치열했다. 그 중 행사의 안주인인 김윤옥 여사가 걸친 ‘영부인 한복’은 해외 취재진의 카메라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기품이 우러나오는 실루엣은 한복에 익숙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시선까지 단박에 모았다. ‘한복의 재발견’이란 평까지 받았다.
‘G20 영부인 한복’을 만든 주인공은 의외로 남성이다. ‘전통한복 김영석’의 김영석(47) 디자이너로 그는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선 한복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인들 즐겨찾는 'G20 스타'
김영석 디자이너가 ‘스타덤’에 오른 건 지난 G20 서울 정상회의. 김윤옥 여사가 입었던 상아색 저고리에 쑥색 치마 한복. 튀지 않으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멋을 내는 데 중점을 뒀어요. 저고리에는 부귀영화를 뜻하는 목단꽃과 나비를 자수로 새기고, 고름은 산뜻한 분홍색으로 달아 치마·저고리 색깔과 잘 어우러지게 했죠.”
그와 김윤옥 여사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결혼식·가족 모임 등 중요한 집안 행사에 입을 한복을 그에게 맡겼다.
“무난한 색과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공식석상에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우신가봐요. 그래도 전 변화를 줘야 한다며 화사한 오렌지색을 추천하곤 하죠. 노란빛이 감도는 오렌지 색은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있거든요.”
‘전통한복 김영석’은 유명인들도 즐겨 찾는다. 세련된 한복의 매력에 영화배우 심은하·아나운서 노현정 등이 결혼식 때 그의 한복을 입었다.
◆입던대로 만들면 '민속의상'
김영석 디자이너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30대 초반까지 이벤트 업계에 종사하다 늦은 나이에 한복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취미로 인간문화재에게 바느질을 배우던 중 자연스럽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다.
몇 안 되는 남성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씨는 한국 전통미를 지키면서도, 파격적인 색감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
“한복에서 많이 쓰는 색깔 배합보다는 화사한 색감을 주로 사용해요. 옷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돋보여야 하거든요. 자연스러운 배색에 직접 새긴 자수는 옷도 사람도 빛나게 하죠.”
스타일에도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다. 긴 두루마기 대신 재킷형의 짧은 디자인으로, 기존의 전통 라인은 지키되 일상 생활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만드는 식이다. 소재에도 다채롭다. 벨벳·스와로브스키 장식 등을 사용해 화려함을 강조했다.
“우리네 할머니·어머니들이 입었던 한복을 똑같이 만들면 말그대로 ‘민속의상’이 돼버리죠. 현실에 맞게 세련미를 더해야 한복도 ‘세계화’ 될 수 있고요.”
한복으로 문화외교를 하고 있는 김영석 디자이너는 꿈이 있다. 한복을 입은 ‘한국의 바비 인형’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금발 머리의 바비인형을 갖고 놀듯, 전세계 아이들 손에 한복 입은 우리 인형이 하나씩 들려있었음 좋겠어요. 그때 쯤이면 우리 한복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겠죠?”
/박지원기자 pjw@metroseoul.co.kr
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