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한복과 초록색 머리가 어울린다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005년 패션지 보그코리아에 실린 한복 화보는 ‘파격’이었다. 선이 고운 저고리 아래 가슴을 살짝 드러낸 모델은 쪽진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것도 초록색으로 염색한 채로.
패션 스타일리스트 서영희(51)씨는 이 같은 기발함으로 전통 한복에 숨겨진 매력을 현대적으로 끌어냈다.
◆헤어·메이크업 등 조화 강조
어려서부터 자수·보자기 등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처음부터 한복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작업한 패션 화보들이 이탈리아·프랑스 화보들과 비슷하다고 느낀 순간, 방향을 틀었다.
“10년차를 넘기면서 ‘나만의 색’을 찾아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한복이 떠올랐어요. 서양에는 없는 ‘우리 거’잖아요.”
그의 손길이 닿은 한복 패션 화보는 예술 작품에 가깝다. 옷보다는 주위 구조물·장신구에 눈길이 가는 경우도 많다. 스타일링 역시 독특하다. 여성 머리에 족두리 대신 커다란 나전칠기 소반을 얹거나, 바이킹을 상징하는 물소 뿔에 꽃자수 복주머니를 거는 식이다.
“패션 화보가 옷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거든요. 헤어·메이크업뿐 아니라 공간과도 조화를 이뤄야 하죠.”
그는 해외 출장 시 패션 매장엔 절대 가지 않는다. 주로 그림·건축물 전시장이나 호텔·박물관 등 ‘핫 플레이스’에 들른다. 거기서 받은 영감을 화보 촬영에 십분 활용한다.
◆항상 새로운 작업 도전
“서영희에게 한복이란?” 구태의연한 질문에 그는 살짝 웃으며 “샘물”이라고 답했다. 자꾸만 무언가가 떠올라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게 만든단다. 이번엔 전통 한복과 크리스털의 만남이다. 그는 12∼16일 서울 안국동 아트링크에서 열리는 ‘韓,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를 만나다’에서 아트디렉터를 맡았다. 윤은숙(윤의한복)·김영석(전통한복)·김영진(차이아르테)·백옥수(한국의상)·김민정(한복 린)·이효재(효재) 등 6명의 한복 디자이너들의 작품 스타일링을 도왔다.
“반짝이는 크리스털은 특별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잖아요. 한복도 마찬가지예요. 이번엔 한복이 화려한 크리스털과 만나면서 날개를 단 격이죠. 그런 면에서 둘의 만남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 여인들의 손맛이 느껴지는 자수를 화려한 크리스털의 색감과 빛으로 재해석했다. 크리스털로 표현한 바위에 목단이 피어 있는 모습을 통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복 참 예쁘다’ ‘아∼ 나도 입고 싶다’라는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가까이 보면서 한복과 친숙해지길 무엇보다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