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연말, 겨울 한복판에서 한적하고 아름다운 여름을 꿈꾼다면 인도네시아의 롬복이 바로 그곳이다. 유럽인들의 휴양지로만 알음알음 알려진 터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숨 쉬고 있다. 발리에서 비행기로 고작 20분 거리지만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곳. 비행기에서 내려 어둠이 깔린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후텁함. 아, 롬복이었다.
◆재래시장·요트투어로 순박·세련미 동시에
롬복의 속살을 제대로 보려면 끄본로에의 암빼난 재래시장을 가봐야 한다. 닭부터 각종 과일·채소·음식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관광객에게 수줍게 다가와 물건을 파는 모습에선 시골의 순박함도 느껴진다.
이곳의 원주민인 사삭족은 아직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마을 사원에선 주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정성스레 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해변가에서 가족단위로 낚시를 하고 물놀이도 하는 모습에선 롬복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온다.
◆놓치면 후회 ‘길리 3총사’
롬복에는 길리 3총사(트라왕안·아이르·게노)라 불리는 멋진 섬들이 유명하다. 요트에 오르니 푸름 가득한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낚시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한나절을 보내니 머릿속에 가득했던 고민은 어느새 녹아버린다.
특히 트라왕안 섬은 해변이 너무나 아름다워 ‘제2의 몰디브’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바닥이 투명 유리로 된 글라스보드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흥겨워 꼬리를 흔든다. 찰랑찰랑 은빛물결은 꼭 깜찍한 꼬마가 치어리더 흉내를 낸다며 은색수술을 들고 흔드는 것처럼 맑고 찬란했다.
섬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면 치모도 투어가 제격이다. 마차를 타고 40여 분간 트라왕안 섬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다. 오후에 강한 햇살이 내리쬐면 바다는 더욱 빛을 발한다.
◆옥수수와 함께 오붓한 데이트
해가 지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몰린다. 마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 온 사람들을 따라 군것질을 즐겨보라. 숯으로 구운 옥수수가 가장 인기인데 매콤달콤한 소스를 발라준다. 재스민차 맛이 나는 음료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롬복의 번화가인 승기기도 밤이 되면 시끌벅적해진다. 승기기 시내에 있는 라이브카페에선 매일 밤마다 라이브 연주로 여행의 흥취를 돋운다.
롬복의 뜻이 ‘작고 매운 고추’라고 했던가. 이름 그대로 롬복은 여행객의 가슴속에 강렬하게 파고든다. 모처럼 여유롭게 해변을 거닐며 쉬고 싶은 이들이라면 롬복이 반갑게 맞아준다. 롬복은 ‘게으른 해변의 휴식’을 달콤하게 속삭이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