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 새로운 길이란 미지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 혹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그 길의 끝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항한 하네다 국제공항이 활짝 열어 준 하늘 길은 이제 새롭지 않을 것 같았던 일본의 ‘숨겨진 속살’로 나를 안내해줬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를 경유, 다시 2시간여를 더 날아 홋카이도 동부에 도착하니 하늘은 깨질 듯 투명하고 공기는 숨 쉴 때마다 찌든 몸을 청소해준다.
홋카이도는 하다카 산맥을 중심으로 삿포로가 있는 서쪽과 도카치·오호츠크 지역 등이 포함된 동쪽으로 나뉜다. 그중 아칸국립공원, 시레토코 등 대자연을 자랑하는 동쪽 홋카이도는 일본인들에게도 ‘가고 싶은 여행지’ 첫손에 꼽히는 동경의 대상이다.
◆‘웰빙투어 낙원’ 도카치
첫날 여장을 푼 오비히로를 중심으로 한 도카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식물성 온천으로 유명한데 환승의 피곤함을 녹여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늦잠 자기엔 아까운 아침 햇살에 창을 열었더니 ‘와∼!’. 밤엔 미처 눈치채지 못한 광활한 도카치 평원이 ‘이곳이 정말 섬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도카치 강에 다다르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봤던 스카이 낚시 풍경이 펼쳐진다. 고무보트에 삼삼오오 올라타고 40분여 동안 8㎞ 리버투어를 하노라면 반짝이는 강물과 그 위에 투영된 도카치의 자랑 ‘블루스카이’가 멋들어진 풍경을 선사한다. 때마침 태평양 바다에서 갓 귀향한 연어떼가 도카치 강물 위로 툭! 튀어오르며 힘찬 생명력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도카치강에선 열기구 투어도 인기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 도카치 숲에 살고 있는 불곰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도카치에는 와인 산지가 있어 와이너리 투어도 가능하다니 웰빙 관광의 낙원이라 할 만 하다.
◆대자연 구시로 습지와 아칸공원
도카치에서 홋카이도의 남쪽 해안도로를 타고 2시간쯤 태평양 바다를 구경하다 보면 일본 최대의 항구도시 구시로에 도착한다. 연어·게 등의 주산지인 구시로는 철새보호를 위한 국제조약인 람사르조약에 등록된 일본 최대의 습지가 있다. 두루미의 서식지로도 유명해 우리나라의 사진작가들도 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아칸호수 인근에는 메이지 유신이후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되면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아이누 민족의 민속마을이 있다. 이곳의 원형극장에선 밤마다 아이누의 전통공연이 흥겹게 펼쳐진다. 민속마을 앞 아이누 기념품 상점에서 이국적인 정취에 취한 채 그 길로 깜깜한 낯선 거리를 걸어 사케집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뒷모습이 꽤 낭만적이다.
아칸호수의 노천온천은 허리 높이의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호수물과 노천탕이 갈린다. 물안개가 스멀스멀 오르는 이른 아침의 노천욕이 운치있다.
아칸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마슈코 호수는 전형적인 칼데라 호수로 홋카이도에서 가장 투명하고, 백조들의 천국인 굿샤로코 호수는 큰 규모는 물론 모래사장을 뚫고 샘솟는 온천수로 유명하다.
◆북극과 맞닿은 오호츠크 지역
홋카이도의 북쪽은 북극의 공기와 맞닿아 있다. 북극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은 오호츠크해를 떠내려오면서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 아바시리를 중심으로 한 오호츠크 지역에 다다른다. 아바시리의 유빙관 체험을 비롯해 오호츠크 지역에서는 유빙워크, 유빙관광쇄빙선 탐험 등을 할 수 있고 날이 좋으면 유빙 위에서 노는 바다물개도 만날 수 있다. 온난화의 척도가 되고 있는 유빙의 양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감소하고 있단다.
아바시리엔 슬픈 이야기가 담긴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이 있다. 120년 전 메이지 신정부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홋카이도에 동서를 연결하는 중앙도로를 건설하기로 하고 아바시리 감옥에 수감된 흉악범 1100명을 동원, 8개월간 무려 200㎞가 넘는 도로를 완공했다. 당시 혹독한 노동 탓에 200명 이상이 숨졌고 아바시리시는 뒤늦게 그들이 홋카이도 개척에 기여한 공을 기리기 위해 그 당시 감옥 그대로 재현해 두고 있다.
홋카이도 동부는 그 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국립공원의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계절 끊임없는 열리는 축제들 그리고 일본내 ‘농업기지’답게 신선한 먹거리 등 여행자를 즐겁게 하는 매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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