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이 지나면 기혼 여성들은 각자의 고생담으로 그들만의 뒤풀이를 가지는데 그중 가장 목소리가 커지는 부분은 ‘왜 누구는 손 까딱 안 하느냐?’는 대목이다.
명절 노동도 힘들지만 여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은 그 노동이 누군가에겐 당연히 면제되는 부조리 때문이다. 난 이 사안이 저출산 문제와 본질적으로 꽤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벤트냐, 일상이냐의 차이일 뿐.
정부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내세우며 보육료와 육아휴직 지원을 모색하고 여성들은 탄탄한 보육시설과 전업주부 지원책을 주창하는 등 다 고맙긴 하지만 그런 시스템과 하드웨어의 문제가 다가 아니기에 ‘썩소’가 나온다. 원래 우리는 선진 복지시스템에 기대 살아온 국민이 아니다. 이 악물고 우리끼리라도 해보겠다며 살아왔다. 그런데 육아 관련해서만큼은 ‘우리’가 없다. 만든 건 ‘우리’지만 키우는 건 ‘(거의)나 혼자’다.
가령 좋은 보육시설이 근처에 생겼다 해도 아침 일찍 가족 밥해 먹이고 출근하면서 보육시설에 데려다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면, 귀가 후 가사노동 역시도 온전히 엄마의 몫이라면 육아에 대한 버거움은 별반 나아질 게 없다. 첫째 아이는 뭣도 모르고 어떻게든 해냈다 치자. 둘째부턴 그게 안 된다. 배우자는 달라진 게 없고, 한 번 겪고 나니 벌어질 상황이 훤히 보여서 더는 못하겠다. 한때 사랑했던 남편을 이젠 진심으로 증오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스친다.
그 어떤 시스템과 하드웨어가 지원한다 해도 닫힌 문 저편의 가정 내 양성평등이 없다면 여자의 자궁은 메마를 뿐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지 이기심이 아니다. 여자는 암탉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슬프게도 ‘돈이 많이 들어 못 낳겠어요’만큼 이것은 떳떳하게 못 밝히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화된 단어들에 묶여 있는, 가정 내 사연일 뿐이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비판하는 남성들의 글을 보노라면 뜬금없이 그들이 사적 영역에서 얼마나 육아와 가사에 동참했는지 궁금해진다. 여성부장관이 “남성들도 가사노동을 ‘도와야” 한다’”라는 어이없는 표현을 썼으니 피차일반일까.